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을 언급하며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산업화'의 성과가 상위소득 1%에 집중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고착화시켰으며, '민주화'의 성과는 민주화를 주도했던 차상위 소득 10%에 집중되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양극화를 고착시켰음을 보여준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이 된 한국 민주주의의 실상은 한마디로, 상위소득 1% 산업화세력과 차상위 소득 10%의 상층노동이 좌우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층노동을 지배·약탈하면서 인간적 상처를 남기는 "과두제민주주의"로의 전락이다. "하층노동의 민주주의"가 없다는 것은 그동안 진보정당과 진보정치가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그 결실이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위소득 10%에 속한 계층들에게 돌아가게 하거나 주로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들을 과대대표했음을 의미한다.
연대임금제도의 대표적인 예는 최근 소개된 일본판 '동일노동 동일임금제'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저성장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임금을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과 비슷한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아베 총리는 2015년에 '1억 총활약 사회'라는 목표아래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란 어젠다를 제시한 바 있다.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판 동일노동 동일임금제의 기원은 1951년 스웨덴 사민당이 성공적으로 시행하여 세계적으로 소개된 '연대임금제'에 있다.
우리나라에선 각 부문의 파워 엘리트들이 대기업 사외이사자리를 노리며 재벌총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영혼을 판다. 특히 고위 관료들과 판검사, 중진학자들 가운데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사외이사제도는 재벌총수의 경제력남용을 억지하기는커녕 사회지배력을 확장시켜주는 역기능을 수행한다. 반면에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동조합이나 종업원들이 선임하는 근로자이사는 지배주주=재벌총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 점이 중요하다. 근로자이사야말로 재벌총수의 회사기회 유용 등 배임행태를 억제할 수 있는 진짜 사외이사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해법을 찾으려면 위기의 수준을 인식해야 한다. 누구나 위기라고 말하지만, 내놓은 처방을 보면 위기의 실상을 모르는 것 같다. 돈을 풀어야 한다는 엉뚱한 처방이나 재벌체제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철지난 생각은 막상막하다. 위기 그 자체보다 위기극복의 지도력이 부재한다는 점이 어쩌면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청와대와 야당 지도자가 흔치 않은 불통의 인물일까? 국민은 변화를 바라는데, 언제까지 불통의 대연정을 지켜봐야 하는가? 지금은 한가로운 시기가 아니다.